“차라리 대한민국을 성형하라 [Get South Korea Plastic Surgery]"
Chosun Ilbo, February 2009
1987년 여름, 예일대 1학년을 갓 마친 열여덟 살의 나는 방학 동안 한국어학당에 다니기 위해 서울에 왔다. 서울은 에너지가 넘쳤고, 정말 멋진 여름이었다.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기쁨도 있었다. 내 얼굴에 대해 편한 마음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엄청난 미인은 아니지만 차마 봐주기 어렵게 생기지도 않았다. 정말 다양한 얼굴과 몸매의 인간들로 차고 넘치는 뉴욕에서 자라는 동안 내 외모에 대해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코네티컷에 있는 그 멋진 대학에 들어간 뒤 좀 더 빡빡한 미적 기준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 예일대에서 여학생이 미인 축에 들려면 날씬해야 했을 뿐 아니라, 백인 기준에서 잘생긴 선을 지녀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 부인과 딸들이 '중산층' 패션 감각으로 내세운 J. 크루도 80년대 후반에는 백인 예일대생을 모델로 썼는데,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상품에 백인 엘리트 대학생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내 얼굴은 동그랗고, 코는 납작하고 눈은 작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이셨는데, 우리 세 자매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큰 꿈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언제나 강인하고 똑똑한 나라인 한국 출신인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렇게 자랐던 내가 백인과 부자로 가득한 대학에 입학한 뒤, 생전 처음 환영받지 못하는 신체적 특징을 지녔다는 느낌을 갖게 됐던 것이다.
서울에서 보낸 여름방학은 나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내가 한국 여성이라는 걸 기쁘게 느끼게 된 것이다. 내 조국이 준 선물―내 외모와 존재에 대해 자존감을 얻게 된 그 여름은 지금껏 내 인생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니, 내가 지금 나의 조국 한국이 세계적인 성형 왕국으로 떠올랐다는 것을 보며 얼마나 슬프겠는가. 최근 한국을 오가며, 또 한국 텔레비전과 잡지를 보며 나는 사람들을 구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한 공장이나 같은 의사의 진료실에서 나온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수지 오박(Orbach)은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섭식장애를 치료했던 사람인데, 최근 '몸(Bodies)'이라는 멋진 책을 썼다. 오박은 오늘날 전 세계인이 매주 2000개에서 5000개의 디지털 조작 신체 사진을 보고 있다고 우려했는데, 우리의 두뇌가 이렇게 조작된 사진들로 편견에 젖어들면서 그 이미지의 내용은 위험하리만치 동일한 것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쌍꺼풀에 오똑한 코로 변해가는 여성들을 보며 나는 오박의 말이 사실이란 것을 깨닫곤 한다.
나는 지금 도쿄에 살고 있는데, 여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모든 일본 패션 잡지는 더 이상 아시아 여성처럼 보이지 않는 아시아 여성 모델로 가득 차 있다. 물론 나는 성형수술한 사람들만 비난할 생각은 없다. 성형 수술 붐은 보톡스를 맞거나 허벅지를 날씬하게 만들기로 하는 개인적 결정보다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마케팅은 쉴 새 없이 우리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새로 나온 물건을 구입하여 잠시나마 진정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는 걱정하도록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 꼭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란 것이다.
나는 한국 사람들의 본래 얼굴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옛 그림을 보라. 가는 눈에 둥근 코가 미인으로 칭송받고 있지 않은가! 아이러닉하게도, 지금도 서구에서는 이런 얼굴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최고급 명품 광고에 나오는 아시아인 모델은 극히 동양적인 얼굴을 지녔다. 그런 얼굴이 품위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백인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 성형을 하든, 단지 텔레비전 스타들과 닮기 위해 성형을 하든, 그런 성형 수술을 서양의 비평가와 학자들은 자기혐오로 여긴다. 1987년 나는 한국인들이 우아하고 강인하다는 것을 보았다. 한국인들의 자부심과 충만감은 젊은 여성인 나에게 미국으로 돌아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지금이라고 왜 아니겠는가!